이낙연 국무총리는 27일 "일본이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들을 철회하면 저희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지소미아를 복구할 가능성은 없느냐'는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또한 이 총리는 현시점에서 비핵화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비핵화가 지난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비핵화에 성공한 사례도 몇 군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대외 정책의 핵심 중의 핵심에 있다는 것에 변함없다"며 "한미동맹이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아무리 동맹 관계여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서는 "국익을 위해 동맹을 맺는 것이고, 동맹을 더 공고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어느 것이 먼저냐, 당연히 국익이 목적이다. 그리고 동맹은 그 목적과 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난 7월 25일 통화 내용에 대해 미 정부의 내부고발자가 상ㆍ하원 정보위원장에게 보낸 서신 형태의 고발장 문건 첫 페이지. 이달 26일 공개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관련 조사를 압박했다”, “백악관이 은폐를 시도했다” 등의 주장이 담겨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에 ‘트럼프 탄핵 조사’라는 메가톤급 태풍을 일으킨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내부고발자는 중앙정보국(CIA) 소속 요원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내부고발자에게 자신과 우크라이나 정상의 전화 통화 관련 정보를 넘겨준 정보 당국자들을 향해 ‘스파이’라고 비난하며 색출 의사까지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내부고발자는 한때 백악관에서 근무했다가 정보기관으로 복귀한 CIA 요원”이라며 이날 이같이 전했다. NYT에 따르면 해당 요원은 현직 대통령과 외국 정상 간 통화 내용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일하진 않았다.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지난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화를 직접 듣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공개된 내부고발 문건에도 “백악관 당국자 등한테서 통화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문건에 기재된 내용은 꽤 구체적이다. 내부고발자는 “백악관 관리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통화 기록을 ‘기밀 보안 시스템’으로 옮겨 은폐하려 했다”고 적었다. 이미 공개된 두 정상의 통화 녹취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子)에 대한 조사를 해 달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압박하는 듯한 정황이 담겨 있다. 문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을 상대로 ‘바이든 조사’를 설득하는 데 대해 미 외교관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내부고발자는 “공직을 수행하며 여러 정부 당국자들한테서 대통령이 2020년 미 대선에 외국을 개입시키는 데 대통령직을 이용한다는 정보를 받았다. 난 동료들의 설명이 믿을 만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를 표하면서 조만간 색출 작업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오전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직원들에게 “누가 내부고발자에게 정보를 줬는지 알기를 원한다. 그건 스파이 행위에 가깝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과거 시절에 우리가 스파이나 반역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지금 하는 것보단 조금 다르게 다뤘다”고도 덧붙였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이 미국의 유엔직원 50여명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내부고발자 신원에 대한 NYT 보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의 변호인은 “내부고발자는 익명의 권리가 있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미 정보기관 16곳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측도 “내부고발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다. NYT는 별도 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측이 내부고발자의 주장을 ‘정치적 해킹’이라 부르며 신뢰성을 공격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비정치적 기관 소속이라는 점을 포함해 제한된 정보만을 보도했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며칠 새 트럼프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턴트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의회의 탄핵 절차 개시에 대한 찬반 비율은 각각 43%로 같았다. 지난 20~22일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36%에 그쳤던 것(반대 49%)과 비교하면, 탄핵 지지 여론이 7%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파리시장 18년, 대통령 12년 정치경력 ‘드골 적자’ 자임한 정통 우파 정치인 이라크전 반대…퇴임 뒤 공금횡령 유죄
프랑스 현대 정치에서 우파 진영의 거두이자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에 맞서 프랑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해왔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86살.
시라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프레데릭 살라 바루는 “시라크 전 대통령이 이날 아침 가족들이 주위에 있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수십 년 동안 파리 정계를 지배해온 정치적 카멜레온”(로이터 통신)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시라크는 18년간 세차례의 파리 시장, 두 번의 총리, 12년 간의 대통령을 지내는 등 화려한 정치 인생을 살았다. 또한, 시라크는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프랑스를 재건한 샤를 드골의 적자임을 자임한 정통파 우파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1932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 엘리트 양성 대학인 파리정치대학과 미국 하버드대를 거쳐 최고 명문 그랑제콜(소수정예 특수대학)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총리를 지냈으며, 이후 파리 시장 선거에 출마해 1977년 3월부터 1995년 5월까지 18년간 세차례나 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81년과 88년 대선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지만, 95년 세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에 올랐다. 2002년에는 역대 최다 득표율인 82%를 얻고 재선에 성공해 2007년까지 모두 12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제5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좌파의 거두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 최장수 기록이다.
시라크는 국제정치 무대에서 ‘능숙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프랑스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영국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 꼭두각시였던 비시정부가 나치를 도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식 자유경제를 추구하다가 보호무역을 펴고, 유럽연합에 반대하다가 다시 지지해 카멜레온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유럽연합 헌법이 부결되고, 이민자 폭동이 일어나면서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으로서 면책 특권이 끝난 뒤인 2011년 파리시장 시절의 공금횡령 사건과 유죄선고를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시라크는 정계 일선에서 물러난 뒤 신경계 질환을 앓아왔으며, 건강 악화로 최근 몇년간은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프랑스 하원은 이날 개원 중에 시라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1분간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모든 공개 일정을 취소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의 정체성을 구축했던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유럽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우리는 유럽의 연합국가가 아닌 다양한 국가들의 연합된 유럽을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시라크 대통령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거세게 비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1년 9ㆍ11 테러를 당한 미국이 ‘이라크의 자유(Iraqi Freedom)’이라는 작전명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당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이 이라크에 있다며 침공했으나 관련 증거는 찾지 못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대표적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한 뒤 파리 시장과 총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파리 시장은 18년간 역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아셈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오전 헬싱키 아셈 회의장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면책 특권이 끝난 뒤인 2011년엔 파리시장 시절 공금 횡령 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그는 2016년께부터 폐 질환 등 건강 악화로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라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프레데렉 살라 바루는 “시라크 전 대통령은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