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눈물의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https://file.mk.co.kr/meet/neds/2019/05/image_readtop_2019_348292_15586979983762620.jpg)

메이 총리는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브렉시트를 질서 있게 인도할 구원자로 여겨졌다.

이후 세 차례 도전 끝에 1997년 잉글랜드 남동부 버크셔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들어섰다. 이후 보수당 의장과 내무부 장관, 보수당 대표, 재무부 장관을 거쳐 영국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정치인으로서의 산전수전을 겪으며 60세 나이에 총리직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영국 헌정 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라는 점도 이목을 끌었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언론은 메이 총리를 `제2의 대처`로 불렀다.
하지만 메이 총리의 위기는 취임 1년 만에 시작됐다. 2017년 6월 메이 총리는 집권 여당인 보수당 의석수를 확대하기 위해 조기총선을 실시했다. 브렉시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총선 결과 보수당 의석수는 오히려 줄었다. 과반 의석마저 지키지 못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을 두고 EU와 본격적으로 협상이 진행된 2017년부터 메이 총리에 대한 비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협상에서 EU에 끌려다니기만 할 뿐 영국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지난해 말 EU와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한 뒤 올해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승인투표 과정에서 메이 총리는 연이어 패배했다. 특히 1차 승인투표에서는 무려 230표 차이로 퇴짜를 맞았다. 영국 정치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역사에 기록됐다. 의회 설득에 실패한 메이 총리는 지난 3월 EU에 브렉시트 시한 연장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가까스로 합의 없는 EU 탈퇴인 `노딜` 브렉시트 위기를 넘겼다.
이후 메이 총리는 보수당 내 강경파 대신 제1야당인 노동당과 협상을 벌였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당시 보수당에서는 이러한 메이 총리의 전략에 큰 불만을 가졌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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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11:39:5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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