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램 홍콩 행정장관이 시민 반대에 밀려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한 15일 홍콩 입법회 앞에 노란 우산이 걸려 있다. 홍콩에서 우산, 특히 노란 우산은 2014년 이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법치를 얻기 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의 상징이다. 지금 보이는 우산에는 범죄인을 중국에 인도하는 것은 악법이며, 자유를 원하고 악법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우산 뒤로 번영하는 홍콩의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부 시민은 SNS에 친중파인 캐리람 행정장관이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외국 국적이라며 이들이 홍콩 시위에 개입한 외세라며 조롱하는 내용을 올리고 있다. 그의 남편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로 홍콩 중문대 교수를 지내다 은퇴한 뒤 중국의 베이징 서우더(北京首都) 사범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아들 둘은 모두 영국에서 교육 받았으며 큰 아들은 중국 기업인 샤오미에 다니고 있다. 1980년부터 홍콩 공무원으로 일한 람 장관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영국 국적을 유지하다 2007년에야 이를 포기했다. 이렇게 약점이 많은 인물이어서 중국이 얼마든지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시민 분노는 결국 중국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홍콩의 정부 수반인 채리 램 행정장관이 15일 기자회견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의 뒤로 홍콩의 번영을 보여주는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대만 정부가 민의를 무시한 법 추진을 바라지 않으며 범죄인 인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홍콩 당국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일부 홍콩 시민은 중국이 홍콩 정부에 압박을 가해 이 법안을 준비 시켰다가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빌미로 송환 법안을 추진한 것으로 여긴다. 이런 소문이 돈 것은 그만큼 중국과 홍콩의 가치관이 다르고, 상당수 홍콩 주민들이 중국을 불신한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콩에서 범죄자 인도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14일 저녁에 열린 집회 모습. 지구 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도시이자 쇼핑과 관광 천국에서 벌어진 홍콩 시위는 전 세계의 관심을 불렀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홍콩에서 103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은 24만 명)이 집결한 6월 9일 시위에 이어 대규모 시위가 계속 이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정치적인 불안은 투자 위축과 인재 유출을 부를 수 있는 경제 악재인데도 말이다.
명품 브랜드 간판이 즐비한 홍콩 코즈웨이 베이의 쇼핑가. 홍콩은 쇼핑천국으로 불리며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시위에선 그런 일국양제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시위에서 일국양제와 함께,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香人治香)’, ‘고도자치(高度自治)’의 3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중국이 했던 약속이다. 홍콩 주민들은 단순한 범죄자 인도 법안 하나만 철회하든지 손 본다고 누그러질 태세가 아닌 이유다. 사태가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홍콩 야당인 민주당의 당원이 캐리 램 홍콩 행정장관이 공산당에 아첨하고 홍콩에 재앙을 불러왔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는 내용을 적은 패널을 들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뒤에 번영하는 홍콩의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정식 명칭이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인 행정장관은 홍콩의 정부 수반이다. 행정장관은 홍콩의 헌법인 기본법에 따라 선거위원회가 간접 제한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중국 국무원 총리가 형식적으로 임명한다. 국민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는 지도자가 아니다. 홍콩 주민은 주민 직접 선거를 통한 선출을 요구하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거부한다. 이럴 경우 홍콩이 준독립국이 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불똥이 본토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2007년 중국의 입법기관 격인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는 2012년 실시 예정이던 행정장관 선거부터 간접선거 선거인단을 1200명으로 늘리고, 2017년부터는 직선제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깜짝 놀랄 일이다. 하지만 고분고분 홍콩을 홍콩 주민의 손에 놓아줄 중국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잘 살펴보면 함정이 있었다.
2014년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실시 예정이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직선제 전환과 관련해 ‘1200명 안팎으로 이뤄진 행정장관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50% 이상이 지지한 사람만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추천위원회라는 강력한 거름 장치를 통해 사실상 친중파 인사 두어 명만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서 전인대는 “홍콩 행정장관은 반드시 애국 인사가 맡아야 한다”며 친중 인사만 행정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홍콩 시민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말만 직선제이지 후보 등록부터 제한해 주민의 의사가 더욱 반영되기 힘들게 된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간선제 시절에도 선거위원 8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후보로 등록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그 결과 홍콩 입법회는 2015년 6월 15일 선거제도 개편안을 8대 28로 거부해 행정원장 선거는 간선제로 남게 됐다. 중국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후보 추천’이라는 제도를 제안하면서 생색만 낸 셈이 됐다.
2017년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녀식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왼쪽)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오른쪽)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수많은 홍콩 주민은 행정원장 선출뿐 아니라 홍콩의 입법기관인 입법회의 선출 방식에도 불만을 토로한다. 입법회는 현재 지역구 35석, 직능대표 35석으로 모두 70석으로 구성된다. 지역구 의원은 홍콩 유권자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하지만, 직능대표 중 30석은 기업을 비롯한 각종 직능단체 회원들이, 나머지 5석은 구의회에서 선출한다. 직능대표는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으며 지역구도 현재 친중파 18석, 민주파 16석, 공석 1석의 분포다. 민주파가 거리엔 100만 명의 항의 군중을 모을 수 있어도 제도적으로는 행정장관을 차지하거나, 입법회를 장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명물인 홍콩의 야경. 즐비한 고층건물과 휘황찬란한 야경은 홍콩의 경제적 번영을 상징한다. 홍콩은 금융과 해운, 그리고 서비스 산업으로 아시아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싱가포르의 맹추격을 받고 있으며 일부 분야에선 이미 뒤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결국 홍콩 시민들은 중국 압박에 따른 정치 불안과 사회 통제가 미래 홍콩의 발목을 잡을 최대 악재로 보고 민주화와 인권 보장, 그리고 법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홍콩 시민들의 중국과 홍콩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들은 이번 시위를 통해 중국인과 다른 홍콩인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https://mnews.joins.com/article/23497743?cloc=joongang|mhome|starreporter
2019-06-15 21:00:1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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