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풍자극 주연 젤렌스키, 결선 승리
득표율 73%로 현직 대통령 24% 압도
정치경력 없지만 ‘반부패’ 메시지 먹혀
드라마 제목도 당명도 ‘인민의 봉사자’
러시아·정치안정·경제개발 등 과제 첩첩
“친러 반군과 민스크 협상 재시동” 의지
21일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한 코미디언 출신 정치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선거 본부에서 활짝 웃으며 지지자들과 함께 자축하고 있다. 키예프/EPA 연합뉴스
티브이(TV) 안방극장에서 평범한 시민이 ‘청렴한 대통령’으로 변신한 코미디언이 진짜 대통령이 됐다.
21일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에서, 정치 경력이 전무한 연기자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현직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22일 오전(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중간 득표(개표율 92.1%) 현황을 보면, 젤렌스키 후보는 73.2%를 얻어 포로셴코(24.5%)를 무려 3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을 예약했다 이는 현지 언론사들이 전날 투표가 끝난 직후 전국 투표소의 4분1에 해당하는 곳에서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젤렌스키 73% 대 포로셴코 24%가 나온 결과와 거의 비슷한 수치다. 앞서 지난달 31일 대선 1차 투표에서 모두 39명의 후보가 나섰으나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최다 득표 1,2위인 젤렌스키와 포로셰코가 이번에 결선을 치렀다.
젤렌스키 당선자는 당선이 확실시된 21일 저녁 선거 본부에서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난 아직은 대통령이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시민으로서 모든 옛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에게 말할 수 있다. 우리를 보라, 모든 게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통적인 기득권 정치세력과 대부호, 엘리트 관료들이 독점해온 최고 정치권력을 서민이 선거로 거머쥘 수 있다는 메시지에는 진한 감동과 흥분이 묻어났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개표가 진행되자 “결과가 분명하다, 상대에게 축하 전화를 할 만하다”며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대통령직은 떠나지만 확실하게 강조하건대, 정치를 그만 두진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반러 민족주의 정서가 지지 기반인 그는 “경험 없는 신출나기 대통령이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비롯해 프랑스·독일·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 러시아 등 주요국 정부는 일제히 젤렌스키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번 선거 결과는 기성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에 물린 유권자들이 변화를 열망하는 표심이 젤렌스키 당선자의 친근한 카리스마와 강력한 반부패 메시지와 맞아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젤렌스키 당선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두고 “거대한 항의 투표처럼 느껴진다”고 짚었다.
21일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한 코미디언 출신 정치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오른쪽)가 아내 올레나 젤렌스카와 기쁨의 입맞춤을 하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젤렌스키는 2015년 인기리에 방영된 정치 풍자 드라마 ‘인민의 봉사자’에서 주연을 맡은 코미디언 출신 배우다. 평범한 고교 교사가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는 열변을 토한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으면서 청렴한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을 열연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속시원한 드라마에 열광했고, 젤렌스키는 이에 힘입어 진짜 대선을 불과 90일 앞둔 지난해 마지막 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여론조사에서 줄곧 1~2위로 돌풍을 일으켰으며, 21일 대선 결선에서 드라마를 현실로 바꾸는 이변을 연출했다. 젤렌스키가 드라마 제작사 동료들과 함께 창당한 정당 명칭도 ‘인민의 봉사자’다.
그러나 이날 대선으로 극적인 정치 드라마의 1부는 끝났다. 젤렌스키 당선자 앞에는 노회한 기득권 세력들 속에서 정치적 능력 증명, 막대한 재정 부채 상환과 경제 개발, 2014년 우크라이나령 크림 반도를 무력 합병한 러시아 및 국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 등 어려운 과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젤렌스키는 당선을 확신한 뒤 기자회견에서, “민스크 협정과 관련해 (친러 세력과) 대화를 이어가겠다. 재시동을 걸겠다”고 밝혔다. 민스크 협정은 2014년 우크라이나와 동부 접경지역의 친러 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의 휴전 협정이지만, 지금까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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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2 06:06:01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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